환성에 거주하는 한국친구 조성혜의 20년 중한우의길

조성혜씨는 중국 허페이 (河北) 창펑 (長峰) 중한우의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20대의 컴퓨터와 도서를 기증할 예정이다.환성에 있는 한국 친구 조성혜의 20년 KFD@`JENVWGQ`V9(PHCY]KR보도에 따르면 친구 조성혜가 합비 장풍중한우의소학교에 와서 어린이들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20대의 컴퓨터와 도서를 기부할 예정이다.환성에 거주하는 한국친구 조성혜의 20년 중한우의길

참신한 교실, 젊은 선생님, 사랑스러운 학생들 ….안휘성 합비의 장풍중한우의소학교가 사람들에게 준 첫인상이다.하지만 13년 전 수해로 학교가 물에 잠겨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이들이 조성혜씨와 사회 각계의 도움으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기자가 취재하기전 조성혜는 방금이 희망소학교를 찾아 아이들을 방문했으며 그들에게 20대의 컴퓨터와 도서를 기부할 준비를 했다.사실 허페이 시민들에게 조성혜는 오랜 친구라 할 수 있다.허페이에 정착한 20년 동안 조성혜씨와 남편은 한국어 장학금을 만들고 희망초등학교 3개소를 지어 허페이는 그들의 제2의 고향처럼 됐다.

조 씨는 허페이시 명예시민, 안후이 황산우의상, 중국우의상 훈장을 받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영주권을 받았다.

허페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한판 맹모삼천 이야기 때문이다."미국 이민을 준비했는데, 중국 역사를 좋아하는 큰아들은 중국에 애정이 넘쳤고,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잠재력이 넘쳤다"고 조 씨는 말했다.허페이는 바오공의 고향이자 소요진, 조조교의 노대 등 삼국지 유적지가 있어 이곳을 찾았다.조성혜씨가 말했다.

낯선 허페이에 와서 이곳의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네 식구는 모두 중국어를 못했고 음식 차이도 컸다.거의 1년이 지난 후, 우리가 중국어로 교류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조성혜씨가 말했다.

순천향대 교수로 있던 조성혜씨는 허페이에 온 뒤 남편과 함께 허페이학원에서 안후이 첫 한국어반을 개설했다.당시 한국어는 작은 언어로서 중시를 받지 못했다. 한국어 공부를 장려하기 위해 우리는 자비로 한국어 장학금을 만들었다.조성혜는"매년 10명의 우수한 학생에게 2000위안의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올해로 19년째"라며"조성혜의 후원으로 안휘중의약대학에서도 한국어 장학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조성혜씨는 2004년 드라마 「 대장금 」이 중국에서 방영된 이래 양국 간의 문화교류가 더욱 빈번해져 점점 더 많은 중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많은 한국 학생들이 중국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성혜씨의 주선하에 한국 대학 최초로 중국어반을 개설하게 되었다.조 씨가 양성한 학생 2000여 명은 모두 한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한국에 정착했다.

이 학생들은 모두 아주 노력하여 몇년 분투한 결과 거의 모두가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하였고 사업에서 성공하였다.조성혜 씨는 지난 10여 년간 매년 한 · 중 문화여름캠프를 조직해 양국 어린이들이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왔다고 말했다.

조성혜도 중한우의를 다지는 과정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공헌수는 장풍중한우의소학교에서 39년간 교편을 잡았는데 그는이 소학교의 변천발전을 지켜보았다.처음에 교실은 모두 벽돌과 기와집이였고 시멘트길도 없었으며 운동장은 온통 진흙밭이였다.공 씨는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126명 모두 조성혜 씨 부부의 사연을 알고 있다고 했다.

장촨바오 교장은"한국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생들의 현재 학업과 생활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한문화교류를 위해 조성혜는 허페이경제개발구 중한산업원의 고문으로 한국 유명기업을 허페이로 유치하는 등 성 27개 대학교와 한국 대학교의 문화교류를 성사시키는 등 많은 일을 해왔다.그녀의 인솔 아래 그녀의 여동생, 매부, 남동생, 오빠의 아이들이 모두 연이어 허페이로 왔다.

기사 주소: https://viagralab.online/artdetail-120.html

코멘트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필수 필드가 표시됩니다. *